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錦衣夜行(금의야행)

장해숙 고사성어
의령신문 기자 / urnews21@hanmail.net입력 : 2019년 01월 31일
錦衣夜行(금의야행)
장해숙 고사성어

유명한 홍문연 잔치가 있은 지 며칠 뒤의 일이다.
ⓒ 의령신문
유방(劉邦)과 진(秦)나라 도성 함양(咸陽)을 누가 먼저 치느냐를 겨루어 마침내 승리를 거둔 항우(項羽)가 싱글벙글하며 함양으로 입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때 그는 유방과 대조적인 성격을 잘 나타내었다.
먼저 유방이 살려준 진왕의 아들 영(嬰)을 죽여 버렸다. 그리고 나서 진의 궁전을 불살라 버렸다. 꺼지지 않고 사흘 동안이나 계속해서 탔다는 그 불길을 안주 삼아 그는 술을 마시며 미녀를 끼고 승전을 축하했다.
또 그는 시황제의 무덤을 파헤쳤다. 유방이 봉인해 둔 재보를 약탈하고 진나라 미녀를 손에 넣었다. 그리고는 곧잘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모처럼 제왕에의 첫걸음을 내딛고 있으면서 스스로 그 발치를 무너뜨려 가는듯한 그의 거동을 보고 모장(謨將)인 범증(范增)이 간언을 해도 그는 듣지 않았다.
오랜 싸움 끝이라 그는 고향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진나라에서 약탈한 재보와 미녀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이다. 한생(韓生)이란 자가 이를 말렸다.
「관중(關中)은 산하(山河)로 든든하게 막히어 지세가 견고한데다, 토지도 비옥하니 이곳에 도읍을 두어 천하의 패권을 잡으시고 제후(諸侯)들에게 호령을 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항우의 눈에 비친 함양은 불타서 재가 된 궁전, 마구 파괴되어 황량하게 초토(焦土)로 변한 쓰레기의 산더미였다. 그 보다도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 자기의 성공을 과시하고 싶었다. 동녘 하늘을 바라보며 그는 말했다.
「부귀를 얻고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비단 옷을 입고 밤길을 걷는 것이나 같다. 누가 이를 알아줄 것이냐?」 아무리 입신출세를 한다 해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다면 이것을 옛 친구들에게 알릴 수가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 항우는 간언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한생은 항우 앞에서 물러나자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
「초(楚)나라 사람은 원숭이에게 의관(衣冠)을 입힌 거나 다름없다더니 과연 그 말이 옳았어.」 (원숭이는 관을 씌우고 띠를 매어 줘도 오래 견디어 있지 않으므로 초나라 사삼의 성질이 거세고 무식하다는 데다 비유한 것)
이것이 항우의 귀에 들어가 한생은 즉석에서 삶겨죽고 말았다.
이렇듯 항우는 일시적인 성공에 도취되어 부귀를 고향 사람들에게 과시하려다가 드디어는 천하를 유방에게 빼앗긴 것이었다.
허나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걷는 것과 같다.」 즉 비단옷을 입어도 아는 자가 없다. 나의 출세를 알리고 싶다는 항우의 이말은 어딘가 인간 공통의 약점을 나타내고 있는 듯하다.

不惑(불혹)

나이 사십을 두고 말한다. <논어(論語)>의 사십이불혹(四十而不惑), 즉 마흔이 되면 함부로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 출처가 된 글은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로서 이는 <논어> 위정편(爲政篇)에 있다.
이 말은 공자가 스스로 말한 일생 동안의 정신사라고 할 만한 것이다.
매우 관념적이어서 알기 어려운 것 같으나 대략 그 뜻은 다음과 같다.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 (그 당시의 학문은 詩, 書, 禮, 樂) 그리고 삼십세에 비로소 학문의 기초가 이루어지고 인간으로서 독립할 수 있는 자신이 생겼다. 사십 세가 되니 학문을 터득하여 몸에 베이게 되었고, 인생체험도 풍부해져서 자기가 살아갈 방법에 대하여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즉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오십이 되어 운명이란 걸 느끼게 되었고 육십이 되어 남이 하는 말에도 저마다 일리가 있다는 것, 즉 남의 주장을 순순히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칠십이 되어서는 원하는 바를 행동하여도 인간으로서의 규범·도를 넘지 않았다.
이 사십 不惑은 인생의 분수령으로 중요한 나이이다. 확고한 신념이 어떠한 악조건 아래에서도 움직이지 않고 서야할 나이인 것이다.
이 나이에 공자는 노(魯)나라에 있었는데 양호(陽虎)가 횡포를 다하며 국정에 함부로 관여하고 있었으므로 이 때문에 대부(大夫) 이하 모두가 정도(正道)를 떠나 있어 그는 단연코 물러났다.
이 나이에는 확고한 인생관이 서 있어야 한다는 「사십 불혹」이다.
의령신문 기자 / urnews21@hanmail.net입력 : 2019년 01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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