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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몸이 기억하는

짚풀로 화합 꼬는 소화마을
의령신문 기자 / urnews21@hanmail.net입력 : 2019년 01월 29일
손이, 몸이 기억하는
짚풀로 화합 꼬는 소화마을
ⓒ 의령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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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31일 오후 3시. 궁류면 소화 마을 회관을 찾았다. 거실에는 어르신 10여 분이 계셨다. 짚풀을 꼬고, 또 황새 등을 만드느라 열심히 손을 놀렸다.
사실 여기에 오기까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짚풀공예 재능기부 현장을 취재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써나가야 할지 막연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돈도 되지 않는 그 작업을 어르신들은 무슨 재미로 왜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그때까지만 해도 머리에서 도무지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녕하십니까. 어르신, 손놀림이 날렵하십니다. 왜, 새끼만 꼬십니까, 다른 무엇을 만들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대뜸 옆 자리 오순희(82) 할머니에게 던졌다.
“새끼를 꼬는 것도 괜찮은 운동이 되는 기라. 그리고 내가 이렇게 새끼를 꼬아줘야 다른 사람이 그것을 가지고 자기가 하고 싶은 그 무엇인가를 만들 게 아닌가베?”
“그동안 만든 것이 있습니까?” 또 대뜸 던졌다.
“황새를 만들었죠. 집에 있는데 가지고 와 볼까요?” 맞은편에서 전진배(57) 씨가 작업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목과 다리가 짧지만 계란을 얹은 황새 한 마리를 들고 그가 곧 다시 나타났다. 단추를 이용하여 눈을 장식한 황새 한 마리가 그럴싸했다.
“왜, 황새를 만들었습니까?” 농경문화와 잘 연결되지 않아 의아했다.
“우리 마을에는 ‘황새등’과 ‘고딩이산’이 있어요. 황새등은 신기 동북쪽에, 고딩이산은 신기 동쪽에 있는 산으로 마주 보고 있어 황새란 놈이 고동을 쪼아 먹고 있는 듯한 지형이지요. 그동안 어려운 살림에 황새등 나무를 죄다 베어 벌거숭이산을 만들어버렸죠. 그랬더니 황새도 어디론가 가고 사람들도 고향을 떠나버려 이 마을은 쇠락의 길을 걸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황새등에 나무가 우거지면서 그동안 외지인의 손에 넙어갔던 논밭을 되찾고 우리 마을이 이전의 활력도 되찾고 있어요. 황새는 우리 마을의 상징적인 존재지요. 우리 마을의 발전을 염원하는 뜻에서 우리 마을의 상징을 만들어본 거죠.” 이현호(73) 이장과 박용만(52) 소화 행복한 마을 공동체 추진위원장이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전진배 씨는 2012년 암으로 1년도 못 살 것이라는 진단을 받고 이 마을에 들어와 7년이 지났는데도 이곳의 신선한 공기와 인심으로 여태껏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며 이 같은 사실을 빠뜨리지 말아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슬슬 풀어가면서 병아리 부화장을 만드는 안숙향(65) 님의 ‘손흥민 미소’를 넘어서는 긍정적인 웃는 얼굴에 눈길을 빼앗겼다.
“몇 살로 보여요?” 안숙향 님이 물었다.
“41살. 아니, 기분이 안 좋으신가 봐.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40살로 하겠습니다.” 얼른 답변했다. 모두들 웃음을 터트렸다.
최동수(78) 어르신은 짚신을, 오판세(77) 어르신은 청국장 띄우는 지푸라기 용기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최동수 어르신은 어려웠던 시절 짚신밖에 없었다며 고무신을 처음 신으며 그것을 아끼느라 가슴에 품고 애지중지했던 그 어렵고 어려웠던 시절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잘 만드시나요?”
“짚풀공예 재능기부 수업은 몇 번 받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어르신들은 이제는 손을 놓았지만 손이, 몸이 짚풀을 다루는 요령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짧은 시간에 그 옛날의 손놀림을 그대로는 아니지만 상당한 정도 되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라고 박용만 소화 행복한 마을 공동체 추진위원장은 설명했다.
박 위원장은 2019년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 신규 사업 모집 공모에 궁류면 소화마을이 최종 선정되는 과정에서 짚풀공예 재능기부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며 마을 주민들의 화합을 다지는 활동을 넘어서 소득으로 연결되는 행사를 모색할 필요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현호 소화 마을 이장은 “우리 마을만큼 단합이 잘 되는 곳도 없어요. 이렇게 재미있게 놀고 함께 밥해 먹고 행복한 마을 공동체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잖아요”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소화마을은 향후 2년간 총 5억 원의 사업비가 투자되어 마을회관 리모델링, 무선방송시스템 설치, 마을길 재정비 등 주민들의 숙원사업이 본격 추진된다.
이날 수업에는 이밖에도 노판현, 박분이, 조정숙, 송막임, 오영이 어르신 등이 참여했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면서 이날의 짚풀공예 재능기부 수업도 마무리됐다. 방안에 계시던 어르신이 나와서 라면을 끓여주겠다고 하셨다. “아닙니다. 다른 일정이 있어서 일어나봐야 합니다. 다음에 올 때는 꼭 먹고 가겠습니다.”
마을 회관을 나서면서 짚풀공예가 어르신들에게는 소중한 추억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손이, 이 몸이 기억하는 정서의 공동체, 그리고 삶의 애환과 지혜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순간으로 농밀하게 다가왔다. 이래서 어르신에게 또 한 수 배우는구나.
한편, 이 수업은 매주 월요일 오후 궁류면 소화 마을 회관에서 서정희 짚풀공예 명인의 재능기부로 진행되고 있다.
의령신문 기자 / urnews21@hanmail.net입력 : 2019년 0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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