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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도 울고 땅도 울었던 그날…

37년 만에 궁류 희생자 위령비 세운다

전병태 위원장으로 하여
위령비 건립 추진위 구성

의령신문 기자 / urnews21@hanmail.net입력 : 2018년 10월 14일
하늘도 울고 땅도 울었던 그날…
37년 만에 궁류 희생자 위령비 세운다

전병태 위원장으로 하여
위령비 건립 추진위 구성


ⓒ 의령신문
1982년 궁류 우범곤 총기난동사건이 일어난 지 37년 만에 이 사건의 희생자를 위로하는 위령비 건립이 민간 차원에서 추진된다.
전병태(전 궁류면장·유가족) 씨는 지난 9월 말경에 위령탑 추진위원회의를 소집하여 회의를 통해 임원선출에서 본인을 위원장으로 추대하고 11명의 위원회를 구성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의령군과의 협의 사항도 있어 현재로서는 그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단계는 아니라고 했다.
전 위원장은 “그동안 슬픔을 가슴에 묻고 살아왔습니다”라며 “37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에야 억울하게 피해를 당한 희생자와 피해자 가족을 생각해 위령비 건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추진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50명의 영령이 구천을 헤매고 있습니다”라며 “영령을 위로하는 위령비라도 세워 매년 그날이 오면 그날의 슬픔을 되새기고 꽃이라도 한 송이 바치고 술이라도 한 잔 쳐 올리는 것이 살아있는 우리들의 도리라고 생각하여 위령비 건립을 추진하여 보았으나 그 당시 사회여건이 성숙되지 못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사회도 많이 변하였고 지난 7월 5일 kbs방송 이후 주변 사람들과 출향인사들이 위령비를 세워야 한다는 의견으로 많은 관심을 갖고 있어 이제야 용기를 내어 유가족 여러분들과 지역에 뜻있는 분들이 모여 위령비 건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되었습니다”라며 “군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의 협조를 당부합니다”라고 했다.
한편, 1982년 4월 26일 그날 궁류는 하늘도 울고 땅도 울었다. 우범곤 총기난동사건을 의령군민들은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여 스스로 가슴 깊숙이 꼭꼭 숨겨놓고 누구도 입에 담기를 그동안 의식적으로 애써 외면해왔다. .....................하현봉 기자.

전병태 위원장이 밝히는 그날의 사건은

1982년 4월 26일 토요일 오후 8시 30분 우범곤 경찰이 무기고에서 소총과 수십 발의 탄알, 수류탄 5발을 탈취하여 지역주민 100여 명을 향해 마구 난사하여 억울한 사상자를 내면서 전국에 슬픔을 안겨줬다.
전병태 위원장 증언에 따르면 무기를 탈취한 우범곤은 제일 먼저 우체국을 찾아가 교환양 두 명을 살해한 것은 계획적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그 당시 통신수단은 교환을 통해야만 전화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우체국을 나와 면사무소 앞에서 청년 한명을 살해하고, 그길로 700M 떨어져 있는 매곡마을로 달려가 우체국 집배원 부부를 죽이고 옆집 50대 남성을 살해하고 가족들에게 부상을 입히고 우물 앞 집에 들어가 마실 나온 부녀 세 명을 사살하고 주위에 있던 부녀 6명의 중상자와 부상자가 발생했다.
매곡마을에서 오후 9시경 1km쯤 떨어진 운계 1구마을에 진입하여 마을입구 식육점에 들어가 식육점 주인을 사살하고 곧바로 미장원에 들어가 미용사를 죽이고 같이 있던 딸과 젊은 청년에게 중상을 입혔다. 총소리를 듣고 옆집 아주머니 두 명과 딸이 놀라서 달려 나오자 바로 3명 모두 총으로 쏘아 죽였다.
그리고 두부집에 들어가 두부집 아주머니를 죽이고 그 딸을 중상을 입히고, 옆집 약방으로 침입하여 대학교 재학 중이던 아들을 총으로 쏘아 죽이자 앞집 아주머니도 총소리에 놀라 무슨 소리고 하면서 나오는데 바로 총을 쏘아 중상을 입히고 앞집 비단장사 아주머니도 역시 총소리에 놀라 나오자 총으로 죽이고 고등학교 1학년 학생과 구멍가게 아주머니 역시 총소리에 놀라 현장을 찾아오자 바로 총으로 쏘아 무참히 죽였다는 것이다.
우범곤은 곧바로 조금 위에 있는 식육점으로 들어가 아주머니와 두 딸을 살해하고 남편은 부상을 입혔다. 이 지역은 시장 통이라 밀집 지역으로 사상자가 많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는 시장통을 빠져나와 주택가에 침입하여 박씨 집 부부 내외와 자녀 세명을 죽였다. 객지에서 직장생활하는 딸 한명만 살고 일가족이 모두가 피해를 당했다.
또 운계마을에서 다리를 건너 네 가구가 살고 있는 곳으로 이동하여 제일 첫집에 들어가 모녀를 죽였다. 운계 1구마을에서 18명이 사망하고 부상자가 17명이 발생하였다.
그리고 운계마을에서 평촌마을로 진입하여 봉황대 앞 독립가옥이 있었는데 그집은 평촌마을 이발관 주인 식구들이 살고 있었는데 불이 켜져 있으니까 들어가서 이발사를 죽이고 부인은 중상을 입히고 아들도 부상을 입혔다.
그 당시 파출소에서 평촌마을까지 1.8km 쯤 되는 거리로 이때 시간이 밤 10시 30분경에 평촌마을 초상집에 찾아가 문상도 하고 있다가 또 광기가 발생하여 상가집에 있던 주민 6명을 사살하고 상가집 앞 아주머니 두 명도 죽이고 조금 옆에 상포계원들이 내일 출상준비도 하고 여러 가지 의논을 하고 있던 중에 마을 이장을 비롯한 주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총을 난사하여 희생자가 많이 발생하였다고 증언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상가집 가까운 기와집으로 들어가 같이 들어간 주민 3명과 같이 있으면서 수류탄을 투척하였는데 문틀에 맞고 떨어진 수류탄이 터져 우범곤과 함께 사상자를 많이 내고 사건이 종료되었다고 말했다.
전체 피해는 사망자 50명 부상자 50명으로 총 1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전 위원장은 당시의 사건현장은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고 말로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수라장이 되었다고 눈물을 훔쳤다.
그 당시 의동중학교 배기준 교장선생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의 처참한 죽음의 현장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병을 얻어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기도 하였다고 토로했다.
궁류 우범곤 총기난동사건이 37년이 지났지만 당시의 비참했던 일들과 살아있는 유가족들의 가슴 아프고 슬픈 일들을 다시 한 번 뒤돌아보면서 말을 이어 갔다.
사건 당시 어린 두 남매는 누나는 초등학교 2학년, 남동생은 초등학교 입학 전에 졸지에 부모를 흉탄에 잃고 고아 아닌 고아가 되었습니다. 두 남매가 성인이 될 때까지 그 고충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어느 중년 부인은 시골에서 농사일을 천직으로 삼고 부부간에 금실 좋고 열심히 일하면서 자녀들 잘 키우며 남부럽지 않게 행복하게 살아왔는데 졸지에 흉탄에 보내고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자녀를 키우면서 농사를 지으려니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않은 것으로 그 어려움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실 것이라고 말했다.
또 40대 후반이었던 한 남성은 부인을 흉탄에 보내고 사별 후에 재혼을 하였는데 마음이 맞지 않아 이혼을 하고 재혼도 여러 번 하였으나 끝내 실패하고 오랫동안 혼자 지내고 있다.
특히 전병태 위원장은 자식을 잘 키워보겠다고 부모 욕심에 교육도시 진주에 고등학교 진학을 시켜 좋은 대학에 진학하였는데 장래가 촉망되는 아들이었는데 피어 보지도 못하고 18세의 꽃다운 나이에 비명에 보냈다며, 37년 동안 아들을 가슴에 묻고 살아왔다고 전하며, 그 당시 전 위원장의 나이가 40대 후반이었는데 딸린 식구 처자식 때문에 따라 죽지도 못하고 37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80대가 되어 그렇게 세월이 흘렀어도 자식에 대한 그리움은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고도 했다.
이웃 미장원에 어린딸 3자매를 키우면서 남부럽지 않게 잘 살고 있었는데 난데없는 날벼락을 맞아 미용사가 사망하자 세 자매는 고아 아닌 고아가 되어 어머니를 그리워하면서 가슴에 큰 상처를 안고 세상을 원망하면서 자랐지요? 또 이웃 젊은 부인이 구멍가게를 하면서 부부간에 금실이 좋고 아들, 딸 남매를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다가 흉탄에 맞아 비명에 간 이후 단란한 가정이 파탄이 났습니다. 그리고 우리집 딸 친구들이 날이 새면 아침 밥먹고 학교가자고 우리집에 오던 딸 친구들이 많이 보고 싶다며, 멀리 하늘나라에서 학교 다 마치고 지금쯤 근심 걱정 없이 잘 지내고 있겠지 정말 보고 싶구나. 전 위원장 아들과 초등학교 동창이고 이웃에 친한 친구도 중상을 입어 한평생을 큰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그 사람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참담함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평촌마을 이발사는 총격을 받아 사망하고 그의 부인은 하악골(턱)이 날아가 큰 중상을 입고 나날이 고통과 괴로움을 감내해 가면서 한 평생을 살아야 하는 비참한 신세가 된 것도 가슴 아픈 일이다. 평촌마을 상가집에 갔다가 상가집 친척 내외분이 한꺼번에 흉탄을 맞아 사망하여 집안이 쑥대밭이 된 사연, 상가집 출상을 위해 이웃사람들과 상포계원들이 상가집 또는 주위에 있다가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그 외에도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돌이켜 보면 희생자 대부분을 잘 아는 사이라 저에게는 너무나 큰 고통을 안고 살아야 했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작은 시골마을 한적하고 인심 좋고 평화로운 전형적인 농촌마을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경찰관이 남녀노소 구별없이 무차별 적으로 100명의 양민을 사상을 하였으니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청천벽력이었다고 말했다.

의령신문 기자 / urnews21@hanmail.net입력 : 2018년 10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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